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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는 왜 쇄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나?
마오쩌둥의 과거 문화혁명 당시, 안경을 쓰거나 손이 고운 남자들까지 노상에서 처형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노동을 하지 않는 자본주의자라는 말도 안 되는 죄명이 붙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보다 더 심한 국가가 있었으니, 바로 그 유명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앙코르와트가 있었던 캄보디아였습니다. 12세기만 해도 베트남, 라오스로부터 조공까지 받았던 강성한 제국이었습니다만, 1431년 태국의 침공으로 캄보디아는 쇄락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또한 지리적으로 태국과 베트남 사이에 자리 잡은 터라 이후에도 양국 사이에서 많은 침탈을 겪으며 희망이 없는 땅으로 전락해버리고 맙니다. 이때 캄보디아는 1863년 캄보디아는 프랑스에게 자국 보호를 위해 신탁통치를 제안하게 됩니다. 이는 당장의 눈앞의 늑대를 막기 위해 더 강성한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악수를 두고만 것입니다.
캄보디아의 독립
그러다 세계대전을 겪은 후,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캄보디아 또한 1953년 시아누크의 캄보디아 왕국이 수립됩니다. 이제는 모든 국민들이 국왕 시아누크를 의지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다 통킹만 사건이 터지게 되고, 캄보디아에 친미정권이 들어서게 되면서, 시아누크는 축출되고 새로운 론놀 정권이 들어서게 됩니다. 미국은 당시 베트남과의 전쟁에 상당히 고전 중이었기 때문에 캄보디아에 친미정권을 세울 필요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1969년 3월 미국 닉슨 대통령의 승인을 통해 B52 폭격기로 캄보디아 내 베트콩들을 제거하기 위해 폭탄 54만 톤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으로 융단폭격을 가합니다. 하지만 이때 폭격으로 수많은 캄보디아인들이 사망하게 되고 (10만 명 이상 추정) 이로 인하여 론놀 정권에 대한 민심이 흉흉해지면서 캄보디아 전역에 걸쳐 반미정서가 싹트게 됩니다.
폴 포트의 등장
이때, 공산주의 세력 크메르루주의 수장 폴 포트가 등장합니다. 반미정서가 짙게 드리워진 캄보디아에서 폴 포트의 등장은 단숨에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에 충분했으며 순식간에 캄보디아의 절반 이상을 점령하게 됩니다. 폴 포트는 권력을 얻자 그의 힘을 자본주의자들을 없애는 데 사용하게 됩니다. 그는 의사, 변호사, 교사 등 사회 내 모든 엘리트들을 고문하고 처형하기 시작합니다. 마오쩌둥의 문화 대혁명 당시에 행해졌던 일들이 같은 모습으로 캄보디아에서 행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본주의자는 죽어주는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민을 돕는 길이다" - 폴 포트
눈이 안 좋아 안경을 끼면, 자본주의 물건을 사용한다면서 죽였으며, 영어를 조금이라도 사용하면 미국 반동이라 몰아서 죽였고, 국가에서 주는 약품의 질이 극히 낮아 따로 약을 구해서 사용해도 죽였습니다.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일부로 격리시키고 모든 교육과정을 국가에서 도맡아 가르치면서 단체생활을 하게 됩니다. 기존에 수많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대다수가 농부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오로지 공산당원으로만 교사로 배정될 수 있었습니다.
영화 킬링필드 (1975 ~ 1979)
영화 킬링필드는 바로 이 시기의 폴 포트 공산 군사정권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에서 일어난 전쟁이 이곳까지 번지게 되었고, 중립국이었던 캄보디아는 우연한 사건으로 전쟁에 휩싸이게 됩니다. 한 미국 기자는 이 시기 캄보디아에 우연히 머무르게 되고 이러한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수 백구의 시신과 해골이 도로, 논에 아무렇지도 않게 흩어져있습니다. 폴 포트 정권은 죽은 사람들의 어린 아들과 딸들에게 이들을 국가의 적으로 몰아 죽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 난 이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뉴욕타임스의 특파원 기자로써 캄보디아에 왔다. 이미 정부군과 공산당 정권 반군과의 치열한 격전으로 온 국토가 폐허가 되었고, 난 이곳에서 내 인생을 바꿔놓은 인물인, 통역사 디스 프란을 만날 수 있었다"
1973년 캄보디아 미국 뉴욕타임스지 주재원 Sydney Schanberg는 캄보디아의 크메르를 제거하기 위해 미국 공군이 나크 루움에 오폭하여 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낸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도착한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이것이 세계에 알려질 것이 두려워 보도진을 따돌리려 하고, 시드니는 통역사 디스 프란과 함께 어렵게 캄보디아로 가 이 참혹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게 된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이 둘에게 위험하게 흘러가게 되고 이에 위기를 느끼게 된 이 둘은 미국 대사관의 도움을 얻어 가족을 먼저 탈출시키고 자신들은 끝까지 남아 마지막까지 이 참혹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취재를 한다.
폴 포트의 몰락
이후 1979년 베트남군의 침공에 의해, 폴 포트는 실각하고 북측 국경에서 게릴라전을 근근이 벌여오다가, 체포되어 1998년 사망하게 된다. 이때 그의 나이는 72세였다.
밴드온더런
잠깐이지만 영화에서 Paul Maccartney의 Band on the Run 이 흘러나왔다.
주인공의 심정을 잘 표현한 것 같아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Stuck inside these four walls
Sent inside forever
Never seeing no one, nice again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이곳에
영원히 갇혀 버려
아무도 만날 수 없어
...
내가 여기서 나가게 된다면
내 모든 것을 기부할 거예요
내게 필요한 것은 자유로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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